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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이 놓치지 않았던 '고금리 장기화' 기조
파월이 놓치지 않았던 '고금리 장기화' 기조
지난 8월 잭슨홀 미팅에서 있었던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의 기조연설.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향해 지속해 하락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를 현재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유지할 계획" (8월 25일)
그리고 한 달 뒤 파월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경제 활동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강력하다. 물가 상승률을 2%로 안정적으로 끌어내리려면 갈 길이 멀다." (9월 20일)
또다시 한 달이 지나고 뉴욕 경제클럽 간담회에 참석한 파월은 '고금리 장기화' 기조를 재확인했다.
"저와 동료들은 인플레이션을 2%로 지속하도록 낮추기 위한 노력에 있어 단합된 상태" (10월 19일)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올해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긴축 기조를 이어간다는 뜻을 계속해서 분명히 했다.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높은 금리를 오랜 기간 끌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미 경제가 침체를 겪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 5% 돌파…"경기를 식혀라"
"미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높다." 파월의 가장 최근 발언이 전해지면서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 5%를 돌파한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잠깐 주춤했던 미 국채 금리는 파월의 한 마디로 다시 치솟았다. 지표상으로는 미 고용과 소비 상황이 국채 금리를 직접 끌어올리긴 했지만 역시 파월의 말이 결정타였다.
미 국채 금리 상승은 목표치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오래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전의 낮은 금리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미 연준이 올해 안에 금리를 한 번 더 올리느냐 마느냐보다 내년에도 고금리 장기화 기조를 이어간다는 점을 시장에선 중요하게 바라본다.
이러면 특히 주택 구입자에게 큰 부담이다. 미국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평균 금리가 2000년 이후 처음으로 8%를 돌파했다. 미 연준이, 그리고 파월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인플레이션 2% 목표치를 위해선 경기 과열을 의도적으로 식혀야 한다는 의지가 강할 뿐이다. 미 연준 입장에선 시장이 경기 호조에 대한 기대감을 여전히 버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경기 침체를 각오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고금리 장기화의 긴축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미 연준의 인식이다. 5%를 돌파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금리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닐 수도 있다. 5%가 아니라 7%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6회 연속 금리 동결인데…점점 세지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경고'
한국은행은 지난 2월부터 10월까지 6회 연속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이로써 한미 금리차는 2%포인트로 유지됐다. 재정·통화 당국은 역대급 금리차에 대한 우려가 나올 때마다 "아직 견딜만한 수준"이라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미국이 올해 안에 한 번 더 금리를 올리면 금리차는 2.5%포인트로 벌어진다.
우리 기준금리는 계속 동결되는 와중에도 시중금리는 오른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과 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20일 기준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4.55∼7.143%로, 고정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 연 4.24∼6.725%보다 높았다. 하단의 3%대 금리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이는 미국발 긴축 기조의 영향이 크다.
6번의 기준금리 동결 과정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경고는 여러 방향으로 나왔다.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선 저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처방을 묻는 질문에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의 단기 정책을 통해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직설적으로 밝혔다. 정부를 향한 경고다.
또 지난 8월 금리 동결을 결정할 땐 "금융비용이 지난 10년처럼 1~2%대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 경착륙만큼은 막겠다는 정부 입장에 변화가 없으니 금융 소비자인 가계에 추가 대출을 받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번 10월 금리 동결 이후에는 정부를 향해 다시 부동산 규제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 총재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부동산시장 불안으로 완화했던 규제 정책을 다시 타이트하게 해서 그걸 먼저 하고 그래도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잡히지 않으면 그때는 심각하게 금리 상승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우리 금융 시장을 흔들고 있다. 언론들이 앞다퉈 '공포'를 말한다. 미국발이기 때문에 우리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환경이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니 내년에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묘수'가 안 보인다.